메시아로서의 대통령
역대 대통령의 직무수행평가를 조사한 통계 수치에는 공통점이 있다. 집권 초기 지지율은 매우 높지만 집권 마지막 분기에는 최저점에 이른다는 것이다. 가장 극단적인 예는 제14대 김영삼 대통령이다. 갤럽조사에 따르면 집권 초기 80%가 넘는 지지율을 보였지만 퇴임할 때는 역대 최저 6%였다. 집권 초기 새 대통령이 제시하는 미래 비전과 희망이 5년 재임 기간을 거치면서 실망으로 바뀌는 것이다.
신기한 점은 이런 희망과 실망을 여러 차례 반복해도, 국민들은 다음 대통령이 집권할 초기에는 영락없이 또다시 높은 지지를 보낸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대통령을 과거 적폐를 쓸어버리고 새로운 나라를 일으킬, 일종의 메시아로 보는 기대감을 높은 지지율로 표현한 것이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단순한 정치 영역의 지도자를 넘어선 삶 전체를 바꿔 줄 메시아로 생각하게 만든 배경을 따져 보자. 우선 권력 집중적 대통령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단순한 행정부의 수장이 아니라 정당의 지도자로서 입법에도 영향을 미치며,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추천을 통해 사법부 영역에도 간섭한다. 대통령은 나의 안전을 지켜 주고, 살 집을 마련해 주고, 교회 문을 닫고 열게 하고, 탈모를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시에 북한 핵을 억제하고, 미·중 갈등에서 균형을 잡으며 기후 변화 대책을 세우기도 한다.
우리 국민들의 국가중심주의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열강의 침략, 일제강점기, 국가독점주의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애국심이 국민의 심성에 내재됐다. 이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고,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면서 국민적 자부심(이른바 ‘국뽕’)은 하늘을 찌른다. 더욱이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국가는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주체임이 확인됐고, 동시에 국가가 국민 개인을 통제할 정당성까지 확보됐다.
